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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의역사

60년을 이어온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

그룹 60년 역사의 탄생
그룹 60년 역사의 탄생
1955년 봄, 대상그룹의 창업자인 임대홍 창업회장은 조미료의 성분인 ‘글루탐산’의 제조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오사카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제조 공정에 관한 천부적인 소질을 기반으로 온갖 어려움 끝에 조미료 제조공정을 습득하고 부산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드디어 1956년 1월 31일, 임대홍 창업회장은 부산 동래구 대신동에 ‘동아화성공업㈜’를 설립함으로써, 웅대한 그룹 60년 역사의 시작을 알리게 됩니다. 미원의 제조공장은 150평 남짓한 작은 규모였지만, 순수 국내 자본과 독자기술로 국산 발효조미료 1호인 ‘미원’을 생산하고, 식품업계의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시작이었습니다.
최초의 국산 조미료, 식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다
최초의 국산 조미료, 식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다
미원 상표명과 상징의 탄생 배경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어감과 간편성, 디자인 측면을 고려하여 ‘미원(味元)’이라는 상표명과 ‘신선로’ 모양을 제품의 새로운 상징으로 정했습니다.
이후 미원은 국내 조미료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아지노모토를 뛰어넘어 국산 조미료의 우수성과 제조업의 위상을 만방에 떨쳤습니다. 58년에는 초창기 미원 제조설비였던 ‘석부(石釜)’를 제조하고, 59년에 부산 서면으로 공장을 이전했으며, 62년에는 사업 확장과 함께 제품명인 ‘미원’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상호를 ‘미원㈜’로 변경했습니다.
사업 확장에 따른 생산과 판매 분리
사업 확장에 따른 생산과 판매 분리
미원㈜는 1964년 전분과 전분당사업에도 진출하였으며, 65년에는 대전 이북지역에서 조미료를 판매하던 미왕산업㈜를 흡수합병하여 ‘서울미원㈜’로 상호를 변경하고, 65년 12월 방학동 공장을 가동하여 발효법을 통해 조미료를 생산했습니다.
미원㈜와 서울미원㈜는 조미료 대량 생산 시대를 연 미생물 발효법 개발을 시작으로 국내 조미료 업계에서 선두로 나섰고, 전분과 전분당 등 관련 산업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종합식품 기업으로서 기반을 튼튼히 쌓아갔습니다. 67년에는 미원 생산량이 1백 톤을 넘어서면서 一味, 味樂 등 수많은 조미료 경쟁 제품을 물리치고 조미료 시장점유율 55%를 초과하며 선두를 유지했습니다.
세계에 미원의 위상을 떨치고
세계에 미원의 위상을 떨치고
발효조미료 ‘미원’은 1970년 10월 2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9회 세계 식품콘테스트’ 통조림 부분에서 당당히 1등으로 선정되어, 그 품질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검증받았습니다. 이는 미원의 엄격한 품질관리 기준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세계적으로 품질을 공인받아 국내 소비 증대는 물론 급격한 해외 수출 신장에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성장을 토대로 회사는 1972년 국내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조미료 생산 해외 플랜트를 수출, PT.MIWON INDONESIA를 설립했습니다.
1973년에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인도네시아에 먼저 진출한 아지노모토와 중국 사사를 누르고 조미료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 업계 1위로 올라서며 세계 조미료 업체로 성장하는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조미료 시장의 대표 주자로 발돋움
조미료 시장의 대표 주자로 발돋움
1977년 12월, 미원이 독자적인 기술로 15억 원의 연구비를 투입하여 국내 최초로 개발한 핵산계조미료, ‘복합미원’ 은 종래의 MSG보다 맛과 질에서 고급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제품이던 글루탐산나트륨 부분의 정체에서 탈피하여 사업성을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80년대 초반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의 따라 더 간편하고 맛이 다양한 조미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늘자, 1982년 10월부터 종합조미료 ‘미원쇠고기 맛나’를 판매하여 맛나 돌풍이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이 열기를 계속 이어가 1985년 3월 20일 미원과 맛나가 86아시안, 88올림픽 게임 지정 조미료로 선정, 국내 최대 식품회사의 위상을 세계에 떨쳤습니다. 6월에는 서울 지역 맛나 판매량이 월 600톤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